잘 지내고 계시나요? 나는 이 말을 가장 서두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말보다는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안부를 묻다가 문득 내 안부가 궁금해지는 요즘의 날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버스 바깥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시리던 일들처럼. 얼굴도 모르는 당신에게라면 나는 내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건 ‘칼럼’이라는 주제 아래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고 일종의 고백이자 연대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여름 끝 무렵 나는 이
학문의 본질은 직업의 취득이나 물질적 풍요, 사회적 명성에 있을까? 먹고사니즘(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이 학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직업이나 풍요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대학원에 들어왔고, 그들이 대학원에서 생산한 연구와 깨달음의 축적은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만이 학문과 세상의 발전을 추동하는 유일한 연료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깨닫는 즐거움,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 이것이 학문을 지속하는 본질은
2020년 여성가족패널조사(8차)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23%만이 찬성했다. 30대 여성도 별로 차이가 없어 36%만이 찬성했다. 적어도 미래는 비혼의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 같다. 그런데 저출산과 관련해서는 좀 다행인(?) 결과도 있다.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30.2%, 30대 여성은 51.2%가 찬성했다. 그러니까 20대 여성 중 7% 정도는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는 갖고 싶다고 말하는 셈이다. 꽤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의 저출산 탈출 비결은 혼
대학원생은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속하지 않는 이상 다른 대학원생의 삶을 알기 어렵다. 누군가 대학원이 학부와 어떤 점이 가장 다른지를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학생들이 교류하며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족하다는 답을 할 것이다. 학부생 때는 학과, 단과대, 심지어는 타 대학 간 교류가 활발해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고 보니 그럴 기회도, 여유도 많지 않다는 걸 느낀다. 대학원 커뮤니티가 부족하다 보니 학부에서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 먹었을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고 거리마다 붉은색, 노란색 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낙엽이 떨어지듯 달력도 한두 장이 떨어지고, 이제 올 한해의 달력도 2장밖에 남지 않았다. 2023년 1월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며 적어 두었던 계획은 이뤘던 일보다 이루지 못한 일들이 더 많다. 떨어진 달력을 다시 뒤집어 보지 않듯이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이 기억나지 않지만 늘 바쁘게 살아왔다. 나의 삶은 오전 4시 30분에 시작하고 하루 2번의 예불을 올린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새벽예불을 마치자마
강사로서 강의하다 보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 중 하나는 행정, 학생지도, 취업 알선 등 학과의 이런저런 잡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학이 아무리 공직사회나 일반 회사보다 자유롭다 할지라도 전임교수들도 선배 교수나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고 미묘한 권력 관계로부터 초연하기는 힘들다. 이에 비해 강사는 상대적으로 그런 것과 멀리 떨어져 있다. 씁쓸하지만 권력에 닿아있지 않으니 누리는 자유 아닌 자유라고 해야 할까? 나쁜 점은 물론 한둘이 아니다. 박봉. 강의만 해서는 살기 힘들다. 한 시간 강의료는 최저
최근 미디어에서 외국인을 희화화하는 장면, 그리고 그것을 불편하게 바라보지 않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묘한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의 ‘위켄 업데이트’ 코너에는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이자 아이돌 지망생 겸 리포트인 응웨이(배우 윤가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해당 코너는 응웨이가 한국인 앵커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응웨이라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응웨이는 꽃무늬 원피스 위에 노란 자켓을 걸치고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리포트를 진행한다. 그는 리포팅 도중 SNS 챌
뜬금없지만 필자의 애청곡을 소개해볼까한다. 이소라의 ‘Track 9’이다. 다음은 가사의 일부다.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존재하는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Track 9의 가사를 들어보면 ‘인생무상’이 묻어난다. 어릴 적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언가 헛헛하고 서운하다. 이 땅에 던져지듯태어나, 세상의 흐름에
‘코로나세대’의 학습 결손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원격수업으로 인해 학력 격차가 심해져 사교육 수요가 늘어났고, 그 결과 초·중·고등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 그 기사의 중심 논지였다. 사교육 시장과 코로나19의 상관성을 정치하게 분석한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그보다 더 내 눈길을 끈 것은 ‘코로나 세대’라는 신조어였다. ‘OO세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시대에 코로나세대는 정확히 어떤 세대를 가리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정
나에겐 두 개의 본업이 있다. 휘민이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본업과 박옥순이라는 본명으로 마주하는 강사로서의 본업. 어느새 시인으로 22년, 강사로 12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달리 창작과 강의, 그리고 연구를 병행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진다. 시에서 논문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우뇌형 인간은 가끔 이런 자조 섞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작품은 일 년에 십수 편을 발표하지만 논문은 한 편 쓰기도 바쁘다. 시집이 나 동화집을 출간하는 해에는 건너뛰기도 한다. 그렇다고 연구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
‘합계출산률 0.78명의 초저출산국’, ‘저출산 위기 극복’, ‘저출산 해결 대토론회 개최’최근 언론에서 저출산과 대한민국의 위기, 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한데 엮어내려는 시도가 자주 목격된다. 보도 내용은 표면적으로 취업난, 집값, 고물가 등 청년이 겪는 사회·경제적 여러 어려움에 공감하며 정부의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출산, 국가, 청년’이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세 단어를 연결하려는 시도 이면에는 출산이 오롯이 개인의 영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력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고려되는 우리 사회의
2022년 봄을 생각하면 마치 불투명한 유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뿌연 느낌이 든다. 봄꽃과 나긋한 바람 그리고 활기가 가득한 사람 등 봄의 정취는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학부와 같은 교정을 거닐고 여전히 같은 음식점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신분이 학부생에서 대학원생이 되었기 때문일까.1999년생 남자들은 대부분 코로나로 모든 사람이 힘들어할 때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99년생이지만 당시 나는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화면으로 학교에 다니고 나머지 시간은 졸업 이후 진학할 대학원과 막연한 고민 속에서
작년 겨울, 우울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겨울이면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나는 여름인 나라에 와 있었고 글쓰는 삶을 계속할 수 있는 대학원 입학이 예정돼 있었다. 이국(異國)은 거의 빠짐없이 맑은 날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속으로 맴도는 한마디는 이것이었다.그만하고 싶다.그만하고 싶은 대상은 당연하게도 사는 것, 그 자체였다. 문제는 그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원인 모를 고통의 여진에 어리둥절해하며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하루와
종이 신문이 죽었다. 더이상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의 풍경도 대학 신문의 종명과 함께 변했다. 갓 발행된 학보의 촉감을 느끼고자 아수라장에 뻗어지는 손, 분주히 움직이는 눈썹의 무리와 반짝이는 언어가. 대학에서 사라졌다. 학보는 언제부턴가 생동하는 일상이 아닌 빛바랜 잔상 정도로 추억되기 시작했고, 종이 신문의 빈자리는 온라인 매체가 대체하고 있다. 종이 신문의 쇠퇴는 대학원신문 폐지 논의로 이어졌다. 대학원신문을 꾸준히 발행하는 대학은 우리대학과 고려대, 경희대, 서강대, 이화여대, 중앙대 정도로 드물고, 잘 읽히지 않는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