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모든 선거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각된 민주주의 공고화, 경제발전, 경제민주화 등 특정 핵심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의 대표 선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역시 몇 가지 핵심의제를 지니고 있다. 저성장 및 저출산 해결, 미중 패권 경쟁 속 대한민국 안보 확보 등이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총선이 지닌 여러 의제 중 이 글은 사회갈등 완화 및 혐오정치 청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올해만 정치인 피습사건이 두 차례 발생됐는데, 이는 사회갈등 및 혐오정치 심화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는 세상 모든 기억의 총합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진 인물 ‘푸네스’가 등장한다. ‘푸네스’의 매우 구체적이고 항구적인 기억은 당장 3시 14분에 본 개의 이름을 3시 15분에 똑같이 불러줄 수 없을 만큼 비옥한 세계를 축조하지만, 정작 그는 그런 자신의 기억을 ‘쓰레기 더미’로 표현한다. 그 표현에는 왜곡의 틈입을 불허하는 완벽한 기억이 오히려 삶의 일반 원리와 공존하기 어렵다는 보르헤스의 믿음이 깃들어 있다. 이렇게 “참을 수 없이 정밀하고 순간적이며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지켜보는”* 자가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등록하는 제도다. 한자로 보면 호주(戶主)는 한 가족의 주인이다. 호주는 남성만이 승계할 수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호주는 승계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1살 아들이 있다면, 1살 아들이 호주가 된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등은 모두 1살 호주 아래에 등록된다. 호주제는 이렇게 남성 가부장 문화의 실체이자 상징인 제도다.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19년이 흘렀다. 호주제 없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는 거의 모든 문제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처리된다. 시장은 그것이 호화로운 백화점 명품관이건 지하철역 구내에서 모르는 상대를 기다리는 “당근”이건 간에, 적어도 거래가 성립하는 그 순간에만은 자발적인 참가자들 사이의 평등한 교환으로 보인다. “평등하다”가 아니라 평등하게 “보인다”라고 쓰는 까닭은 바로 그 거래가 성립하는 순간으로부터 그 이전으로 시점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처음과는 다른 상(像)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주머니 속 사정을 헤아려 사고 싶은 비싼 재화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경주와 포항의 접경지대에 있는 형산 정상에는 왕룡사원(現 기원정사)이라는 사찰이 있다. 왕룡사원은 1900년경 경주 백률사에 주석했던 성전(聖典) 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불전인 무량수전에는 성전스님이 1920년경 포항 포교당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하는 불상 네 구가 봉안돼 있다. 이곳에 봉안된 불상은 1466년작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579년작 소조석가불상과 아미타불상, 그리고 조선후기작으로 추정하는 석조보살상인데, 이 중 세 구가 확실한 편년을 가지고 있는 조선 전반기 불상이어서 한국조각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예로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은 어떨까? 미사일 발사와 핵 개발 등 국방기술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북한은 기술적으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상의 과학기술이나 산업 부분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의 상황은 전혀 다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심각한 불균형이 나타난다. 국방기술 부문에서 제한적 영역이지만 상당한 성과물로 도발을 일삼고 있는 반면, 과학기술이 북한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데는 그 기여도가 낮다는 게 북한 자체의 평가이기도 하다. 그래도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 자력번영을 하겠다면서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유
서사가 넘쳐나는 시대, 자본주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고 전前 반성적 층위의 삶을 점령한다. 의식적 통제와 비판적 성찰이 비켜난 자리는 세일즈가 차지한다. 스토리텔링 시대의 소비자들은 특별한 경험을 약속받고 서사를 소비한다. 이른바 스토리셀링(story-selling)이다. 서사의 위기란 우리 삶에 촘촘히 들어앉을 가능성으로써 저 멀리서 오는 지식으로의 서사 대신 우리 삶을 점령한 휘발성의 정보와 하나의 상품으로 변형된 힘없는 서사들에 대한 일갈이다.* 이런 서사의 위기는 예술 전방위에 공유될 위협이기도 한바.
미중 전략경쟁의 본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발발, 가치사슬과 공급망의 교란,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고도화, 인플레이션과 금융 위기 등 지금은 이른바 복합위기의 시대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2개의 전쟁은 진영충돌, 종교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전략 경쟁의 본격화와 진행중인 2개의 전쟁 등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이다.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
30대 중반의 A씨는 IT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한다. 주로 혼자서 업무를 보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팀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가끔 고객과의 미팅도 있다. 코딩 실력은 뛰어나지만, 회의에 지각하는 일이 잦고 약속한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팀장은 A씨를 책임감 없고 성실하지 않은 직원으로 평가하지만, A씨는 자신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자주 잊어버려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주변에서 A씨와 같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말로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일 수도
불교의 연기법에 따르면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사유 방법을, 어떤 조건에도 변치 않는 실체를 상정하는 초월성과 대비하여 내재성의 사유라 한다. 모든 것이 조건에 내재적이란 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옳다, 선하다, 아름답다는 판단이 조건을 떠난 분별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니 불교에는 미학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미학이란 미추를 분별하고 그 이유나 근거를 밝히는 것이니까. 그래서인지 불교는 대단히 정교하게 발전된 철학은 있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미학은 따로 존재한 적이 없다. 정말 불교미학이란 불가
사역(寺域)에 들어서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에 이르는 길을 떠올려 보자. 경내로 들어서는 도중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과 같은 여러 개의 문을 지나칠 것이다. 그 중 천왕문을 지날때는 험악한 인상을 자랑하는 거대한 조각 네 구를 만나게 되는데, 잔뜩 치켜올린 숯검댕이 눈썹 아래 부릅뜬 눈, 용 비늘 같이 탄탄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발 아래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령(生靈)을 복속시킨 무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불교의 호법신 ‘사천왕’으로, 사천왕은 고대부터 탑이나 건물 등에 부조되거나
번역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근사한 책이 나왔다. 인류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애나 칭의 책이다.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만 보면 조금 아리송하기도 하다. 버섯과 ‘자본주의의 폐허’, 그리고 ‘삶의 가능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적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버섯이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글쓰기, 심지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저자는 작고 미묘한 사물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버섯을 이해하
지금 우리나라 풍경을 보면 전 연령대에서 식도락을 추구하는 것 같다. TV나 SNS의 맛집탐방프로그램과 먹방의 영향일까. 심지어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기호식품까지 퍼져 고가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구매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내 돈 써서 내가 즐긴다는데 뭐가 문제야?’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다 태어난 인생 길어야 100년 사는 동안 사회가 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마음대로 살 권리는 있으니까. 그러나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촌의 많은 사람이 마음대로 먹고 마시
잦은 이동과 하염없는 변화, 그리고 허물어지는 경계 속에 서 있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혼종성’은 더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혼종이라는 단어를 마주한 우리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하나는 단일성(單一性)의 상실을 열등함과 불결함으로 판단하는 시각일 테고, 다른 하나는 이종(異種)의 결합으로 잉태된 다양성과 새로움을 긍정하는 인식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종을 인식하는 방법은 둘 중 어떤 것에 가까운가. 아마 혼종을 ‘순혈(純血)의 오염’으로 보는 전자가 일반적일 것이다. 논문의 저자는 한국인이 ‘혼혈(혼종)’이라는 단
“불교는 무신론에 가까운 유신론입니다.” 지난 여름 조계종에서 만난 한 스님이 해준 한 마디가 이번 여름의 잔상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 그 스님은 다른 종교인들과의 만남에서 불교의 특성을 설명할 때면 이 문장으로 답한다고 한다. 내가 스님의 의도대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불심의 상당 부분의 근거도 이 문장에 배어 있다. 불교의 역사에서 다른 종교에서 발생한 논란·논쟁이 없는 주제 중 하나가 우상숭배이다. 사전에 따르면 우상숭배는 “신 이외의 사람이나 물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일”을 의미한다. 즉, 종교가 성립되기 위한
2023년 여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사회현상을 목도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무고한 시민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칼부림과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그사이 경찰은 ‘흉기난동범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고, 민간에서는 시민의 자발적 제보를 통해 칼부림 테러 예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테러리스, https://terrorless.01ab.net/).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 행동은 우리 사회를 불안으로 몰
극장으로 가는 길 극장으로 가는 길은극장에 갈 수 있도록극장에만 갈 수 있도록극장에도 갈 수 있도록극장뿐만 아니라극장이 아니어도갈 수 있도록설계되어 있었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극장으로 가는 길은 부드러워요푹푹 빠져요 육교를 내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들려왔고그 소리가극장에 도착해서 영화를 관람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울 때까지귀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 나는 극장에 누워나는 침대에 누워그 웃음소리는 대체 뭐였을까생각하다가다시극장으로 가는 길에놓여극장으로 가는 길은지루하구나육교를 내려오며 크게
전해지던 코로나 감염자 수 정보가 자취 를 감추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 문명을 집 어삼킬 것 같았던 시절은 어느새 아득해진 것만 같다. 공원과 체육관, 식당과 회의실에 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돌아온 일상 의 평화가 재난영화의 끝자락처럼 감사한 요즘이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전 세계 의 료 시스템이 시험대에 오를 정도로 들썩 이던 2020년 봄, 그레임 맥케이(Graeme MacKay)라는 만화가의 한 그림이 트윗상 에서 유명세를 탔다. 인류 문명이 코로나의 큰 파도 앞에서 무기력
에두아르 르베는 『자살』의 원고를 출판사에 송고한 직후, 파리에서 자살했다. 그 때문인지 ‘자살’은 소설의 내용이면서, 동시에 소설을 완성한 형식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자살이라는 현실에서의 행위가 정확히 어떻게 소설이라는 ‘허구’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 짓는다는 것일까.르베의 또 다른 소설 『자화상』이 온통 “나는”으로 시작되는 거대한 자기 묘사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자살』은 자살한 ‘너’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이들 ‘나’와 ‘너’는 내용상 많은 것을 공유한다. 우리는 서로 겹치는 『자화상』의 ‘나’
법당에 들어가 불상(佛像)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자. 떠올려 본 부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연상하는 부처님의 생김새는 일반적으로 번쩍이는 황금빛의 금동불일 것이다. 하지만 불상의 재료는 금동 이외에도 돌, 흙, 나무, 직물류 등으로 다양하다. 불교에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후, 경전에서는 불상의 조성과 공덕을 언급하면서도 불상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7세기 말 당(唐)의 제운반야(提雲般若)가 번역한 『대승 조상공덕경(大乘造像功德經)』도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 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상이